5박 6일 홋카이도 겨울 여행ㅣDAY 2. 렌터카로 떠나는 비에이 투어

5박 6일 홋카이도 겨울 여행ㅣDAY 2. 렌터카로 떠나는 비에이 투어

홋카이도 겨울 여행의 진짜 시작은 둘째 날부터였다. 전날의 긴 이동과 설렘 어린 첫 밤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 햇살 아래 본격적인 여행이 펼쳐지는 순간. 하얀 눈이 가득 덮인 도로를 따라 달리는 렌터카, 어색하지만 설레는 일본에서의 첫 운전, 그리고 우리가 직접 골라 담을 비에이의 풍경들. 오늘은 단 하루 안에 여러 감정이 교차할 만큼, 감동이 짙게 배인 하루였다.

고요한 설경 속에서 시작해 화려한 도시 삿포로로 이어지는 여정은 홋카이도의 매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하루였고, 우리가 이 겨울에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이 여행기의 두 번째 페이지를 펼쳐본다.

홋카이도 겨울 여행


렌터카로 떠나는 비에이 투어

둘째 날 아침 7시 30분 경, 전날 미리 픽업해둔 렌터카를 타고 드디어 비에이로 출발했다. 창밖으로 하얗게 눈이 덮인 조용한 아침 풍경이 펼쳐졌고, 본격적인 홋카이도의 겨울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로 렌터카 여행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로 렌터카 여행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로

비에이는 홋카이도에서 손꼽히는 겨울 절경지로 포인트별 포토 스팟들이 잘 정비돼 있어 드라이브하며 둘어보기 좋았다. 일본에서 운전은 처음이라 무섭고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도로는 대부분 제설이 잘 돼 있었고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아 사고 없이 비에이에 잘 도착했다. 간혹 블랙아이스 구간이 있을 수 있고 눈이 오늘 날에는 앞이 하얗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초보자라면 천천히 운전하는 것이 좋다.

  • 출발 시각 : 오전 7시 30분경
  • 이동 시간 : 약 50분 ~ 1시간
  • 경로 : 국도 237호선을 따라 남쪽 방향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로 렌터카 여행

비에이의 상징, 크리스마스 나무

첫 번째 목적지는 비에이의 대표 포토 스팟인 크리스마스 나무였다. 하얀 설월 한가운데 고요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크리스마스 나무

오전 8시 30분경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평화롭게 크리스마스 나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적막한 풍경 속에서 마치 이 순간이 나와 와이프만을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철 비에이는 온통 새하얀 평야로 뒤덮여, 마치 진짜 크리스마스 풍경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준다.

삼각형으로 균형 잡힌 나무는 마치 누군가 공들여 만든 세트장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가 촬영한 사진과 영상만 해도 수십 컷이 넘었지만, 그 순간엔 아무리 찍어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

그리고 오전 9시 30분경, 크리스마스 나무를 떠나려 할 즈음에는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단 1시간 차이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질 줄 몰랐는데, 가능하다면 1시간이라도 빨리 아침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이 적은 시간에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과 영상을 여유롭게 남길 수 있어 훨씬 더 만족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다.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

렌터카로 직접 이동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렇게 한적한 크리스마스 나무의 아침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이 왜 비에이의 상징인지, 왜 많은 이들이 겨울이 되면 다시 이곳을 찾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의 시작을 이만큼 로맨틱하고 감동적으로 열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완벽한 첫 코스가 있을까 싶었다.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

잠시 멈춰 사색하는 시간, 탁신관

크리스마스 나무에서의 여운을 안고 이어서 도착한 곳은 비에이의 상징적인 문화공간 중 하나인 탁신관이다. 비에이 출신의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지만, 우리는 탁신관 내부 대신 그 옆으로 난 조용한 숲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에이 탁신관

탁신관 옆으로 이어지는 나무길은 마치 누군가 숨겨둔 비밀의 통로처럼 조용하고 아늑했다. 눈이 덮인 오솔길 사이로 겨울 햇살이 스며들고 높게 솟은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천천히 걸으며 그 나무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어떤 전시관보다도 감성이 풍부하게 흐르는 순간이었다.

비에이 탁신관

탁신관 건물 자체도 마치 그림책 속 오두막 같은 분위기였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졌고 바쁘게 움직이던 여행의 리듬이 살짝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비에이 탁신관

겨울의 푸른 숨결, 흰수염폭포

탁신관에서 여운을 느낀 채 다시 차에 올라 향한 곳은 흰수염 폭포였다. 비에이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 위치한 이 폭포는 겨울철이면 온천수와 설경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색감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비에이 흰수염폭포

비에이 흰수염폭포

폭포를 보기 위해 다리 위 전망대로 올라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비밀 장소처럼 흰 눈으로 덮인 절벽 사이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푸른 온천수, 얼음, 물줄기, 그리고 수증기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색감은 정말 ‘청량한 겨울’ 그 자체였다.

비에이 흰수염폭포

흰수염폭포는 특이하게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수가 절벽 사이로 스며 흘러나오며 형성된 폭포로, 물빛이 맑은 코발트블루를 띤다. 주변의 눈과 얼음, 그리고 수풀 사이로 퍼지는 푸른 안개가 더해지니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오전에 도착해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겨울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비에이 흰수염폭포

잠시 들린 비에이역, 그리고 주차

점심 식사를 하러 준페이로 향하기 전, 먼저 비에이역에 들렀다. 비에이의 중심지이자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작점인 이곳은 아담하고 예쁜 외관이 인상적인 목조 건물이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전, 역 주변은 비교적 한산했고, 마을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비에이역

비에이역

우리는 ‘준페이’ 근처에 마땅한 주차 공간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비에이역 맞은편 공영주차장에 먼저 차를 세워두었다. 도보 10분 정도면 충분히 이동 가능하고 주변도 걸어 다니기 좋아 결과적으로 훨씬 여유로운 선택이었다.

비에이 준페이

비에이의 국민 맛집, 준페이

흰수염폭포에서 겨울의 정취를 실컷 느끼고 나니, 금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는 비에이의 ‘국민 맛집’이라 불리는 준페이. 튀김 요리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자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 받는 식당이다.

비에이 준페이

특별히 일찍 움직인 것도 아니고, 점심 피크 타임인 12시 30분쯤 도착했는데 믿기지 않게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웨이팅을 각오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앉고 나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 앞에는 순식간에 단체 관광객이 몰려든 탓에 우리 다음 손님부터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정말이지, 이런 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비에이 준페이

식당 내부는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였으며 메뉴판에는 일본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 있어 주문이 어렵지 않았다. 보통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새우덮밥을 주문하지만 우리는 새우덮밥과 새우튀김 카레를 하나씩 주문했고 시원한 콜라 한 잔도 함께 곁들였다.

비에이 준페이

먼저 등장한 새우덮밥은 그야말로 작품이었다. 통통하고 바삭하게 튀겨진 대형 새우가 밥 위에 곧게 누워 있었고 아마 새우 튀김 안에 간장 베이스의 소스가 들어간 것 같은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식욕을 자극했다. 새우는 3마리와 4마리 중 선택이 가능한데 고민할 것도 없이 4마리를 골랐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바삭한 튀김옷 사이로 터지는 새우의 탱탱한 식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소스가 밥과 기가 막히게 어울려 어느새 그릇은 비워지고 있었다.

비에이 준페이

새우튀김 카레도 마찬가지로 인상 깊었다. 홋카이도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카레에 바삭한 새우튀김이 더해져 그 조합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튀김은 느끼함 없이 담백했고 무엇보다 추운 겨울날에 먹는 따뜻한 일본식 카레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비에이 준페이

비에이 준페이

이날 점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너무 맛있었고 무엇보다 그 바쁜 시간대에 운 좋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와이프는 “여기 진짜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연거푸 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눈길 위를 달려 나아갔다.

비에이 준페이

설경 속 숨은 고요한 명장면, 마일드세븐 언덕

세븐스타 나무보다 먼저 찾은 곳은 비에이의 또 다른 명소, 마일드세븐 언덕이었다. 이곳은 1978년 일본 담배 브랜드 ‘마일드세븐’ 광고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장소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비에이 마일드세븐 언덕

비에이 마일드세븐 언덕

겨울철 마일드세븐 언덕은 눈으로 덮인 완만한 지형과 나무들의 균형 잡힌 배열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 덕분에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사진으로 보던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비에이에 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다행히 언덕 맞은편에는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이 아주 뛰어났다. 주차 후 도로를 건너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언덕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주차장은 무료임에도 공간이 좁아 단체 버스를 수용하기 어려워 비에이 버스 투어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즉, 버스 투어로는 직접 찾아올 수 없는 장소인 셈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렌터카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비에이 마일드세븐 언덕

비에이 마일드세븐 언덕

사실 이곳의 풍경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일드세븐 언덕에 줄지어 서 있던 나무들은 사유지에 위치해 있어 몇 년 전, 나무 일부가 벌목되기도 했다. 지금 남아 있는 나무들도 언제 베어질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 이번 여행 중 이 풍경을 직접 보고 온 것만으로도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본 마일드세븐 언덕.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사진보다도 더 선명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겨울 비에이를 찬미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햇살이 강하지 않아 풍경은 더욱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잠시 멈춰 서서 이 장면을 오래 기억하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깊게 담아두었다.

비에이 마일드세븐 언덕

외로운 고목이 전하는 메시지, 세븐스타 나무

비에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너무도 유명한 장소, 바로 세븐스타 나무였다. 겨울의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비추는 언덕 위에 나무 한 그루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풍경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홀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듯했다.

비에이 세븐스타 나무

세븐스타 나무는 1976년 일본의 담배 브랜드 ‘세븐스타’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일약 전국적인 명소가 된 곳이다. 고요한 평야 위에 외롭게 서 있는 이 나무의 실루엣은 단순한 사진 속 이미지 이상이었다. 실제로 눈 앞에서 마주하니 존재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맞은편에는 무료 주차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비에이 버스 투어 시간과 겹치지 않아 현장은 한적했고, 여행객 몇 명이 조용히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붐비지 않은 덕분에 이 고요한 풍경을 여유롭게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비에이 세븐스타 나무

사실 세븐스타 나무는 그 자체도 유명하지만, 옆으로 이어지는 ‘패치워크의 길’과 그 길을 따라 줄지어 있던 자작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더욱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븐스타 나무와 자작나무들을 하나의 코스로 묶어 찾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 자작나무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 자작나무들이 있던 그곳은 사유지였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무단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모두 벌목되고 말았다.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은 우리가 홋카이도로 출발하기 불과 일주일 전. 결국 우리는 세븐스타 나무만 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나니, 이 풍경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깊숙이 와닿았다. 이른바 ‘오버투어리즘’의 폐해를 몸소 실감한 순간이었다.

비에이 세븐스타 나무

그래도 세븐스타 나무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아름다움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요하고 묵직했던 이 장면이 비에이에서의 렌터카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엔딩처럼 느껴졌다.

비에이 세븐스타 나무

아사히카와 쇼유라멘 맛집, 라멘야 텐킨

비에이에서의 설경 드라이브를 마치고 다시 아사히카와로 돌아오는 길. 렌터카를 반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고, 마침 차량 반납 지점 근처에 유명한 라멘 맛집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들르게 된 곳이 바로 라멘야 텐킨.

아사히카와 라멘야 텐킨

이곳은 아사히카와의 전통 쇼유라멘을 대표하는 집 중 하나로, 깊고 진한 간장 베이스의 국물로 유명하다.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를 세우기에도 아주 수월했다. 여행 중간에 들르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차를 반납하기 전 잠시 시간을 내 식사를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가게에 들어서자 진한 국물 향이 가득 퍼졌고, 기대감을 안고 주문한 아사히카와식 쇼유라멘은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국물은 짠맛보다 감칠맛이 강했고 돼지기름이 둥둥 떠 있는 표면 덕분에 식지 않고 따뜻하게 유지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면은 수분 함량이 낮은 치지레멘(꼬불면)으로 국물과의 조화가 탁월했다.

아사히카와 라멘야 텐킨

지친 몸에 따뜻한 국물 한 입을 넣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이래서 아사히카와는 라멘 도시라고 불리는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 마지막 라멘까지 완벽했던 하루였고 렌터카 반납 전 들리기 좋은 라멘야 텐킨은 여행자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 맛집이다.

아사히카와 라멘야 텐킨

 

주유 안 해도 OK, 렌터카 반납

든든하게 라멘을 먹은 뒤, 마지막 일정은 렌터카 반납이었다. 원래는 기름을 쓴 만큼 근처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반납해야 하지만, 길이 익숙지 않아 주유소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 시간도 애매해서 그냥 반납 장소로 직행했다.

조금 걱정되었지만 막상 반납해보니 기름을 채우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차량 내 연료 상태를 확인한 후, 렌터카 회사 측에서 부족한 연료만큼 요금을 청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기름값도 현지 기준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따로 주유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어 오히려 편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가 빌렸던 차는 하이브리드 차량인 토요타 캠리였기 때문에 연료 소모도 적었다. 실제로 청구된 연료 요금은 1,000엔도 채 되지 않았다.

렌터카 반납

도요타렌터카 아사히카와역앞점은 반납 절차도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되어 여행 후반부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엔 긴장되던 오른쪽 운전석 운전도 이젠 익숙해져서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제 다시 삿포로로 향할 시간. 짧지만 밀도 높았던 비에이 렌터카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렌터카 반납

잠시 들린 겨울 정원, 키타사이토 가든

렌터카 반납을 마친 뒤, 우리는 JR 아사히카와역으로 향했다.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어 키타사이토 가든을 잠시 산책했다. 이곳은 아사히카와 8경 중 하나로,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도심 속 대형 공원이다. 여름엔 꽃과 푸름이 가득하지만, 우리가 찾은 겨울의 정원은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주소 : 8 Chome-3 Miyashitadori, Asahikawa, Hokkaido 070-0030 일본

키타사이토 가든

넓게 펼쳐진 정원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의 산책로는 눈길 속으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얼어붙은 비에이 강변 너머로는 흰빛의 언덕이 끝없이 펼쳐졌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며 발끝엔 뽀드득 소리가 따라왔지만 그런 고요함마저도 좋았다.

잠시만 머물기엔 아쉬운 곳이었다. 시간만 여유로웠다면 좀 더 깊숙이 걸어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음에 아사히카와에 온다면 키타사이토 가든에 다시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타사이토 가든

아사히카와에서 삿포로로, 돌아가는 길의 여운

키타사이토 가든에서 잠시 겨울 풍경을 눈에 담은 뒤, JR 아사히카와역 플랫폼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열차 역시 첫날과 마찬가지로 특급 라일락 열차 + S킷푸(Sきっぷ) 조합. 왕복권이기 때문에 따로 표를 구매할 필요는 없었다.

s킷푸

하지만 자유석 티켓이라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열차 출발 10분 전쯤 플랫폼에 올라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고 객차 안도 만석에 가까웠다. 다행히 빈자리가 두 개 나란히 있어 와이프와 함께 앉아 삿포로까지 여유 있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앉지 못했더라면 1시간 반가량을 서서 가야 했을 테니 정말 운이 좋았다.

차창 너머로는 하루 동안 지나온 설경이 다시 흘러가듯 펼쳐졌다. 해가 기울어가는 풍경은 어쩐지 아침에 비에이에서 맞았던 첫 햇살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고, 하루 종일 차곡차곡 쌓아온 감동과 여운이 조용히 마음을 채워왔다. 계획대로 아사히카와와 비에이를 무사히 여행하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오는 이 여정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행복했다. 짧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 속에 담긴 순간 순간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사히카와역

화려한 불빛이 반기는 도시, 삿포로 도착

S킷푸 자유석에 운 좋게 앉아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사히카와를 떠난 열차는 저녁 무렵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여전히 추운 날씨였지만 삿포로의 환한 조명이 금세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둘째 날 숙소는 ‘호텔 비스타 삿포로 오도리’. 삿포로역에서 지하 통로를 따라 오도리 방면으로 쭉 걸어가면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도보로 15분 내외 거리였고 눈이나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이동하기도 수월했다.

삿포로역에서 오도리역

밤이 내려앉은 삿포로는 아사히카와에서 보았던 고요하고 정제된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더 크고 화려하며 활기가 넘쳤다. 도심의 불빛, 스스키노 쪽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거리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이제 진짜 삿포로의 밤이 시작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오도리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풀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밀려왔다. 하지만 아직 둘째 날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삿포로의 밤을 가볍게 즐길 차례다.

호텔 비스타 삿포로 오도리

호텔 비스타 삿포로 오도리

내 입맛에는 어려웠던 스프카레,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풀자 슬슬 허기가 밀려왔다. 본격적인 스스키노 야경 산책에 앞서, 먼저 배를 채우기로 했다. 삿포로에 왔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스프카레다. 독특한 향신료와 국물 베이스로 만들어진 일본식 커리인데, 삿포로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스스키노 일대에도 이름난 스프카레 맛집들이 여럿 있지만, 이왕이면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에게 더 사랑받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바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현지 블로거나 후기를 통해 ‘찐맛집’으로 자주 언급되던 곳으로, 스스키노 중심부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밤 8시쯤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대기 줄이 길었다. 입구에서 직원이 우리를 맞이하며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해요”라고 말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어디를 가도 이 시간엔 마찬가지일 것 같아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실제로는 약 50분 만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게 내부는 전형적인 동남아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고 향신료의 향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주문은 이곳의 인기 메뉴인 치킨 스프카레로, 맵기(1~10단계)와 밥의 양, 그리고 토핑 등을 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새우 스프카레에 치즈 토핑 추가, 맵기는 3단계로 선택했고, 와이프는 치킨 스프카레에 브로콜리 토핑 추가, 맵기는 5단계로 주문했다.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비주얼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큰 그릇에 가득 담긴 스프카레와 통째로 들어 있는 닭다리, 채소들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국물은 맑고 붉은 빛을 띠며 얼핏 보면 매콤한 국물 요리처럼 보였다. 밥은 노란 쌀밥이었고 고소한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맛 자체가 없는 건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라마이는 평점도 높고 일본 내에서도 스프카레 맛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진한 커리 풍미와는 조금 달랐고 국물은 향신료 향이 강하고 묽은 느낌이어서 익숙하지 않았다. 밥과 함께 먹어도 ‘밥이 국물에 잠긴 느낌’이라기보다는 ‘국물과 밥을 따로 먹는 느낌’에 가까웠다고 할까. 정갈한 플레이팅과 풍부한 향에도 불구하고 몇 숟가락 먹고는 젓가락이 자꾸 멈췄다.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결국 절반 이상을 남기게 됐다. 평소엔 음식은 남기지 않는 편인데, 입맛이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함께 간 와이프는 조금 더 맛있게 먹었지만, “또 먹고 싶진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통해 삿포로에서 가장 특색 있는 음식 중 하나를 직접 경험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음식이지만 한번쯤은 꼭 먹어봐야 할 삿포로의 대표 음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다시는 스프카레를 먹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삿포로 라마이 삿포로 중앙점

스스키노의 밤, 니카상과의 짧은 만남

라마이 스프카레에서의 저녁을 마치고 우리는 스스키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스키노는 삿포로의 중심이자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번화가답게 밤이 되자 화려한 네온사인과 인파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꼭 보고 싶었던 장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스스키노 사거리에 우뚝 선 니카상이었다.

일본 위스키 브랜드인 니카의 광고판으로, 레트로한 복장의 신사가 술을 들고 있는 이 간판은 삿포로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곳이다. 특히 밤이 되면 강렬한 조명이 켜져 이 일대를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로 감싼다.

스스키노 니카상

사실 이곳은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사진을 찍기 쉽지 않았다. 사거리 중심이라 차량과 사람들이 계속 오가고, 원하는 구도로 찍기 위해선 타이밍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함 속에서도 우리는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삿포로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순간 중 하나였기에 짧지만 확실한 추억이 되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여행 둘째 날의 마지막을 천천히 정리해갔다.

스스키노 니카상

콘택트렌즈도 OK, 돈키호테에서 해결

니카상과의 짧은 추억을 남기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전 스스키노 인근의 메가 돈키호테에 들렀다. 말 그대로 ‘사람 반, 물건 반’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복잡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매장은 여전히 북적였고, 계산대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삿포로 메가 돈키호테

사실 이곳에 들르게 된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출발 전에 와이프가 렌즈를 챙겨 달라 했는데 깜빡한 걸 여행 첫 날에 알았고, 어제와 오늘 내내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일본은 안과 처방이 있어야 렌즈 구매가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이제 어떡하지’ 싶던 찰나, 돈키호테에서 렌즈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돈키호테에 들어가보니 정말 다양한 종류의 렌즈들이 있었고, 가격도 국내보다 훨씬 저렴했다. 고민 끝에 와이프는 평소 쓰던 렌즈와 비슷한 제품을 골랐고, 결국 예상보다 더 많이 구매했다. “오히려 잘 됐네!”라는 와이프의 말에 안도와 고마움이 함께 밀려왔다. 덕분에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그 순간이 참 따뜻하게 기억된다.

렌즈만 사고 다른 쇼핑은 다음으로 미뤘다. 너무 붐비는 분위기 속에서 장시간 줄을 서긴 부담스러웠기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간식과 캔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길었던 둘째 날을 천천히 마무리했다.

돈키호테 콘택트렌즈

하루를 마무리하며

비에이의 고요한 설경부터 스스키노의 화려한 야경, 라멘과 스프카레, 렌즈 하나에 담긴 감사함까지. 둘째 날은 감동과 작은 사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하루였다. 아사히카와와 비에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가득 담아낸 하루였고, 렌터카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이 이 모든 순간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세심히 계획한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일은 삿포로에서의 본격적인 도심 투어가 기다리고 있다. 설렘을 안고, 깊고 편안한 잠에 들었다.

삿포로 편의점


5박 6일 홋카이도 겨울 여행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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